유네스코 세계 유산 중에는 종종 사적 소유물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현재 지정된 1121개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중 사유지는 단 16개인데, 그 중에서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스토클레 가문의 저택(Palais Stoclet, 1905-1911)은 대단히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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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것도 운에 맡기지 않았다'

 

브뤼셀의 부유한 거리, 떼흐뷰헝 가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늘어선 나무 사이로 시대를 가늠하기 힘든 건축물 하나가 눈에 띕니다. 이른바 "유럽의 타지마할"로 묘사되는 팔레 스토클레죠. 백색의 노르웨이 대리석으로 장식된 외벽과 높은 사각형 파사드에는 구석구석 청동 잎사귀가 세공되어 있고, 파티나가 가득 내려앉은 청동 지붕 위로 등대 같은 청동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건물의 부분과 전체가 '기하학적 선'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특징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고전과 근대를 절묘하게 공존시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죠.

 

이 저택은 한창 거대 금융자본이 형성되던 19세기, 벨기에의 은행가였던 아돌프 스토클레 부부가 건축했습니다. 2012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마이클 와이즈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예술의 신전shrine to art'과도 같은 집을 원했고, 그 어떤 것도 운에 맡기지 않은 호사스러운 주거지를 만들고자 했다.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이 디자인하고 비엔나 예술가들이 줄줄이 장식에 참여한 이 집에 대해, 어떤 방문객은 '라벤나 바실리카의 은총 같았다'고 묘사할 정도였다." 

 

* 라베나(Ravenna) : 아드리아 해안의 고대 도시. 서로마 황제의 거주지이자 비잔틴 제국의 무역 중심.

* 바실리카(Basilicas) : 고대 로마의 회당.

 

팔레 스토클레의 실내 장식과 가구에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를 비롯해 베르톨트 뢰플러Bertold Loeffler, 레오폴드 포스너Leopold Forstner, 미하엘 포볼니Michael Powolny, 리하르트 룩쉬Richard Luksh, 프란츠 메츠너Franz Metzner, 그리고 콜로만 모저Koloman Moser 등, 당시 첨단을 달리던 비너 베르크슈태트(빈 공방)의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게 됩니다. 요제프 호프만과 빈 공방의 디자이너들은 백지위임장Carte blanche을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오늘날까지 최종 건축 비용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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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Klimt, "the life of tree", Dining room at Palais stoclet

 

 

수많은 예술품과 가구, 조명과 주방설비 등이 팔레 스토클레 만을 위해 특별 제작됩니다. 클림트는 대리석을 두른 다이닝룸에 6미터에 달하는 '생명의 나무' 벽화를 직접 그려 장식했죠. 건축가이자 디자인 평론가였던 아론 벳스키Aaron Betsky는 팔레 스토클레를 '금빛의 새장'으로 묘사했습니다. "팔레 스토클레는 값비싼 것들을 내세우는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예다. 마치 알리바바의 동굴을 오뜨 꾸뛰르 버전으로 다시 지은 것 같다. 눈에 닿는 모든 것, 삶의 모든 면을 완벽하게 조형하는 인간의 능력을 본보기로 보여 준다."

 

하지만 팔레 스토클레의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돌프 스토클레 사후, 집을 변함없이 보존할 것을 조건으로 자녀들에게 상속되었고, 여전히 사유재산으로 남아 있죠.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1976년, 벨기에 정부에 의해 유적으로 지정되기는 했습니다. 이는 그 즈음 10여 년 동안, 스토클레 하우스에 수집되어 있던 (빈 공방의 작품 외에) 다른 예술품들이 지속적으로 유출된 정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2004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스토클레가 소유하고 있던 두초Duccio의 "madonna and child" 템페라화를 4,500만 달러에 구입했는데, 이는 당시 최고가로 기록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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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예술로서의 예술공예 운동

 

빈 공방의 역작인 팔레 스토클레는 모든 장르의 미술을 통합하며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을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아르누보 직전 시기를 풍미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에세이에서 발견되는데, 오페라 역사상 가장 중요한 걸작으로 꼽히는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가 그 결과물입니다. 게잠트쿤스트베르크는 이후 팔레 스토클레의 요제프 호프만을 거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브루노 베버 등 20세기의 근대 건축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 Gesamt+kunst+werk : Total Work of Art

 

물론 그 이전에도 이러한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세기 말 아르누보 건축가들이 건축의 모든 면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총체예술의 개념을 뚜렷하게 보여준 것은 사실입니다. 이즈음 건축가들은 구조 설계를 책임지는 것뿐만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와 생활환경 전체를 설계하는 것까지 건축가의 영역으로 포함하기 시작합니다. 가구나 벽지, 조명, 문고리의 디자인이나 식기, 그릇까지 말이죠. 예를 들어, 빈 공방의 작가들은 광택을 낸 흑단 선반 위에 보석이 세공된 은촛대와 튜렌을 올려놓는 것까지도 총체예술의 한 표현으로 접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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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잠트쿤스트베르크, 총체예술의 핵심은 복잡성입니다. 개인의 예술은 그보다 더 큰 목적에 종속됩니다. 총체성이 존재하려면, 완전한 통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 작가의, 혹은 수많은 다른 것들을 모아 '하나로 구성하는 일'은 매우 복잡합니다. 다양한 의미와 상징의 해석 가운데서 자칫 복잡성에 매몰될 위험도 있습니다. 총체예술은 그보다 더 나아간 어떤 깨달음입니다. 복잡한 의미들을 조합한 깨달음에서 나아가, 작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특정한 양식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복잡성 가운데 광범위한 통일성이 달성된다면, 그것은 다시 상징화되어 서로 다른 스타일과 융합합니다. 이런 모순적인 순환 어법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독특한 접근법Unity of Opposites을 연상시키죠.

 

이것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현대적인 개념에 빗댄다면, 오늘날 우리가 '브랜딩'이라고 부르는 지난한 일련의 과정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아르누보들과 달리, 빈 공방이 구분될 수 있었던 것은 - 아직 등장하기 전인 - '브랜드'에 대한 이해 덕분입니다. 팔레 스토클레 프로젝트를 시작할 즈음, 빈 공방의 작가들은 그들의 정체성인 분리파(Secession, 제체시온) 스타일로 기하학적 선명성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일례로, 빈 공방의 트윈 W 로고에서 나타난 양식이 팔레 스토클레의 외관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죠.

 

빈의 분리파는 독일의 게잠트쿤스트베르크 뿐 아니라, 영국의 예술공예 운동의 영향을 함께 받았습니다. 이들 또한 산업화 시대를 위기로 인식하고, 공예의 역할과 장인의 지위를 높이고자 했죠. 이른바 가짜 우아함을 개혁하고, 중세에 존재했던 공예의 탁월함을 복원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빈 공방은 높은 비용의 프로젝트로 치우치게 됐죠. 2017년, 빈 공방 회고전에 대한 뉴욕 타임스의 기사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 중 어느 것도 저렴하지 않다. 비엔나는 제국의 수도였고, 부르주아들의 새로운 고향이었으며, 그들의 열정적인 고객의 대부분은 부유한 유태인이었다. 최고의 재료에 대한 빈 공방의 고집은 비용을 증가시켰고, 장인들의 월급도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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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빈 공방은 순수예술과 응용예술의 경계를 없애고자 노력했습니다. 1908년 비엔나 예술 전람회에서 클림트는 이렇게 말했죠. "우리는 예술품을 관대하게 해석하듯, 예술가의 개념도 관대하게 해석한다. 창작하는 사람뿐 아니라 향유하는 사람들 또한, 창작물을 경험하고 감상하는 예술가들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이 추구한 높은 예술적 완성도는 역설적으로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향유자'가 될 수 있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결국 빈 공방은 유럽 대전과 대공황 가운데 폐업했고, 전후 총체예술을 이어 받은 바우하우스가 대량 생산을 절묘하게 융합한 모더니즘을 전개해 나가게 되죠.

 

오늘날 응용예술이자 생활공예를 다시 조명함에 있어, 이들이 보여준 총체성과 완성미, 균형과 통합에 대한 감각은 깊은 영감을 줍니다. 아쉽게도 오늘날은 대중의 시대이고, 빈 공방의 팔레 스토클레와 같은, 오로지 개인적인 실용과 즐거움만을 목적으로 한 사치품으로서의 공예는 더 이상은 어려울지도 모르죠. 하지만 창작물을 함께 경험하고 깊이 향유하는 충분한 예술가들이 있다면, 어떤 지점에서든 우리는 다시 총체예술을 복원해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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