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을 뜻하는 마스터피스(Master-piece)란 단어는 공예에서 나왔습니다. 많은 장인과 도제들이 모여 공예품을 생산하던 중세 길드에서, 특별히 길드의 '마스터'가 직접 만든 공예품을 구분하기 위해 생긴 말이죠. 과연 무엇이 장인(artisan)과 마스터(master)를 구분 짓는 걸까요.

 

 

 

12reJKP05516_5.jpg

 

Wegner Papa Bear Chair

 

 

 

모던 덴마크 디자인은 '미드 센추리 모던'이라는 한 시대 사조를 만들었지요. 그 시작점에는 한스 베그너(Hans J. Wegner, 1914-2007)가 있습니다. 그는 바우하우스의 혁신을 이어받은 디자이너이자, 직접 목수 일을 했던 마스터 장인이었어요. 저 유명한 'The chair'가 바로 베그너의 마스터피스 입니다.

 

베그너는 도제식 수공예에서 이어진 장인 정신의 바탕 위에 현대 산업디자인을 완벽하게 결합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끝없는 정제를 통해 '절대 완성되지 않는' 과업을 이어간 철학자이자 마스터였어요. 그래서 베그너의 말과 철학은 단순히 가구의 영역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가 생전 보여주었던 태도는 여전히 우리에게 다양한 영감을 줍니다.

 

 

 

A chair is to have no backside; it should be beautiful from all angles.

"의자에 뒤쪽이 있어서는 안 된다"

 

베그너는 공예품에 뒷면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어디에서 보아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죠. 그는 좋은 의자를 고르려면 의자를 뒤집어 밑을 보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공을 들여 완성한 의자라면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스터의 공예품이 다른 이유는 이런 차이입니다. 사람들이 눈치챌 수 없는 부분, 쉽게 지나치는 작은 부분에서 품질은 갈린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죠.

 

Hans_J_Wegner.jpg

 

지금은 생산의 시대고, 모두가 생산의 논리로만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뭔가를 달성하고 표현한다는 건, 생산 논리에서는 넌센스일 수 있죠. 하지만 공예품은 생산품과 다릅니다. 공예품은 모든 부분이 일관성 있게 완성되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도, 굳이 뒤집어 봐야 확인할 수 있는 부분도, 모두 한결같은 완성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앞과 뒤, 윗면과 바닥면이 느껴지지 않아야 합니다. 디자인의 시작과 끝이 없어서, 어떤 방향에서 봐도 동일한 분위기가 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작고 사소한 디테일에 공을 들이는 이런 태도는 생산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뒷면의 완성도를 추구한다면 생산 시간은 비약적으로 늘어나지만, 보이지 않으므로 상품성이 동일하게 높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품을 하나의 오브제로서 제작하는 마스터에게 이런 '뒷면'들은 전혀 작고 사소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완결이며, 자기완성입니다.

 

 

 

A chair is only finished when someone sits in it.

"의자는 누군가 앉았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이야 다들 동의하는 언어가 되었지만, 당시 가구 디자인에서 이것은 강력한 격언이었습니다. 베그너는 디자인의 목적이 사용자에게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고, 사용자와 디자인 사이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실제로 그의 라운드체어는 1960년, 닉슨과 케네디의 대선후보 TV 토론회(candidate debate)를 통해 유명해졌습니다. 베그너는 평생 500여 개의 의자를 디자인했지만, 결국 그의 의자가 완성된 것은 누군가 거기에 앉는 순간이었죠.

 

요즘처럼 인체공학과 사용자 경험이 중심 가치인 세상에서, 그의 말은 조금 새삼스럽게 들리기도 합니다. 모든 제품이 사용자에게 정성껏 봉사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오늘날 많은 제작자들이 모듈화에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 생산의 논리 때문이죠. 작업은 빠르고, 생산은 쉬워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이 정말 사용자가 방점을 찍을 수 있는 물건일까요? 모두가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물건이 정말 사용자를 배려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생각해 볼 부분이 많은 개념입니다.

 

 

90Kennedy_poster.jpg

 

 

 

The use of materials was clear and lucid, the fervour of the makers was evident in the craftsmanship, and the idea underlying the composition was clear and consistent.

"재료의 사용은 명료하고, 열정은 장인정신에 근거해야 하며, 구성의 논리는 명확하고 일관되어야 한다"

 

베그너는 생전에 거의 1천여 개에 가까운 가구 디자인을 했고, 의자만 500여 개를 디자인 했습니다. 그럼에도 "의자의 부품만 보아도 그것이 어느 의자의 것인지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죠. 이것은 베그너의 디자인 철학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디자인은 하나의 고유한 주제를 가지고 있으며, 주제는 작은 부품 하나까지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는 "주제를 밝히고, 그것을 모든 부분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주제와 디테일 사이에 명확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이죠.

 

공예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예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제작된 것이며, 반드시 논리적인 구조가 존재합니다. 공예품의 구조와 만들기 방식, 디테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하며, 디자이너는 그것을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런 소재를 선택했는지,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는 디자인은 제대로 된 디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 모든 공예가들을 끝까지 괴롭히는 문제가 바로 이 내용일 겁니다.

 

만들기의 논리구조란 스타일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분야에는 역사적으로 매우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합니다. 한 스타일에도 다양한 만들기 공법이 존재하고, 같은 공법이라도 부위마다 소재마다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은 달라집니다. 제작 과정에는 순서와 방향이 있고, 하나의 스타일에도 오랫동안 발전한 논리가 있습니다. 이를 오랜 기간 살펴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의 목적을 이해하게 되면, 디자인의 논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제품은 단순히 부분 수정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기능의 목적에 의해, 디자인의 리듬에 따라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변할 때 진보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용자를 인터뷰하고, 제품을 기획하고, 치수를 재고, 패턴을 만들고, 생산하는 모든 과정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제작 효율을 위해 이런 논리적인 순서를 생략하고 무시하면, 최종적인 완성품의 미묘한 뉘앙스에서 돌이킬 수 없는 공백이 생기게 됩니다. 실패한 디자인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image-asset.jpeg

 

 

 

The chair does not exist. The good chair is a task one is never completely done with.

"완벽한 의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의자란 절대 달성할 수 없는 과업이다"

 

이것은 1949년, 그 유명한 Wishbone Chair를 발표하면서 인터뷰에서 했던 말입니다. 당시 비평가들은 위시본 체어를 두고 '완벽에 가까운 의자'라며 극찬했지만, 거기에 베그너는 이런 대답을 내놓았던 것이죠. 그는 "오랜 의자의 스타일을 완전히 해체하고, 순수한 구조만으로 의자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다음 해, 베그너는 오늘날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의자로 회자되는 바로 '그 의자'를 디자인 해내고야 말죠.

 

베그너는 기술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완성에 가까운 마스터였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예가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끝없는 탐구를 중단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단순히 이를 겸손함의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훗날 사람들이 베그너에게 어떻게 모던 대니쉬 디자인을 이룩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을 때, 베그너는 이렇게 답했거든요. "it was rather a continuous process of purification." 아마 기술적으로는 '정제'라는 뜻일 테지만, 그보다는 좀 더 종교적인 느낌의 '정화'로 번역하고 싶네요. 

 

 

 

palet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저품질의 범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탐욕스럽게 자원을 소모하며, 쓰고 버리기를 반복할 뿐이죠. 이런 시대에 베그너는 어떤 태도와 역할을 이야기합니다. 자, 공예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걸까요?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아직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또 다른 완벽함을 바로 곁에서 느껴보고 싶습니다.

 

 

 

 

 

PP 503_10.jpg

 

Wegner, 'Round One(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