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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는 나의 스타일이다.”

J. 터너가 존 러스킨에게 보낸 편지(1844년)

 

 

 

 

건축가 페터 줌터Peter zumthor의 저서 <ATMOSPHERES> 첫 페이지에 있는 말입니다. 그는 건축이 반드시 경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직접 출판한 저서는 많지 않은데요. 그럼에도 짤막한 두 권의 책을 냈는데, 바로 <Thingking Architecture>와 <ATMOSPHERES>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작업을 할 것 같은 건축가가, 평생에 걸쳐 압축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분위기'라는 모호함이라니, 흥미롭지요.

 

줌터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 발스Vals에 온천 시설을 디자인하여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리츠커 상을 받았습니다(Pritzker, 2009). 마치 지층을 그대로 들어 올린 것 같은 이 건축물의 내부는, '공간이 가진 존재감의 결정체로서의 분위기'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콘크리트의 양감과 물의 질감 사이에, 틈새로 들어온 자연광이 끼어들면서 하나의 인상을 만들고 있죠.

 

"건축은 형상이다. 물리적이고 실존한다. 나는 실제 건축물에 관심이 있다. 도면이나 가상화면은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건물이라는 특정 소재로 둘러싸인 공간이 존재감(presences)이나 분위기(atmospheres)를 가진다는 것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분위기’란 줌터가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연구한 핵심 개념입니다. 그에게 분위기란, 건축의 본질을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죠. 분위기란 공간과 형태의 무수한 개별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추상적인 느낌의 일종이며, 평범한 듯 보이는 작은 요소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섬세하게 조율하여 하나의 감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노련한 건축가조차, '분위기를 만드는데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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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의 심리적 감성은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분위기와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감지합니다. 예를 들어, 첫인상의 힘은 아주 강력하죠. 어떤 사물이나 사람, 공간을 대할 때, 우리의 내면에서는 순간적인 거부감이나 즉각적인 이해, 자발적 정서 반응 등이 즉시 생겨납니다. 이 반응은 본능적이고, 직관적이며, 매우 인간적입니다. 전체에서 작은 차이를 감지하고 판단하는 이 능력은 초기 인류의 생존과 관계된 중요한 부분이었을 거라고 하죠. 우리는 단번에 본질을 파악하고, 뉘앙스를 연결해 내며, 그 안의 시적 분위기를 음미합니다.

 

이런 복잡한 연계를 촉발시키는 분위기란, 대체 뭘까요. 우리는 주제에 배어든 하나의 지배적 정서를 말하고 싶습니다. 평범한 사물도 분위기라는 옷을 입으면 마치 연금술을 부린 것처럼 특별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비싼 소재와 오랜 시간을 들인 제작품에 아무런 분위기가 없어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분위기는 전적으로 심미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해석되기보다, 사물을 감정으로 음미할 수 있도록 만들어 즉각적이고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즉,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이 바로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아름다움이 넘쳐나는데도, 우리는 생각보다 분위기 없이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소유하고 싶어 하면서도, 주의 깊게 배열하지 않습니다. 마치 전체적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있는 듯, 지극히 일부분에 집중하고, 특정 상징과 타인의 선호를 무작정 사 모으기만 합니다. 하나의 주제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으면 그냥 복잡한 형태입니다. 여러 가지 맛이 조금씩 나기 때문에, 이것인지 저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지요. 비슷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안도감을 느끼다 보면, 그것이 그 사람의 분위기가 되어버립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주체적인 고유성이나 신비감 등은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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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단지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존재가 되려면, 분위기 있게 살아야 합니다. 나만의 분위기를 원한다면, 감정을 자아내는 개별 요소를 선별하여 나의 정서로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평범한 요소 하나에도 수천 가지 선택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어떤 요소를 어떻게 조율하고, 얼마나 완성도 있는 색조를 만드냐도 관건이죠. 다만, 그 색조에 옮고 그름은 없습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이것은 이것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분위기를 가졌느냐'는 곧,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이기 때문입니다.